제목 : 왕종근 선배님에 대한 경북대 웹진기사 등록일 : 2002-08-03    조회: 817
작성자 : 권택성(65회) 첨부파일:
Best Alunmae

 모두들 곤히 잠들어있는 새벽 3시 30분. 남들보다 최소한 두 세 시간 빠르게 왕종근 아나운서의 하루는 시작된다. 방송생활 25년째인 왕종근 아나운서는 오늘도 아침 6시에 시작하는 생방송을 위해 캄캄한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구수한 인상, 맛깔진 말솜씨…, ′진품명품′의 바로 그 아나운서, ′생방송 세상의 아침′ 프로그램으로 전국의 아침을 깨우는 왕종근 아나운서.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쪼개어 쓰며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인 왕 아나운서는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72학번이다.

프리랜서 선언후 삶이 더 다채로워져

  왕 아나운서는 지난 1977년 안동 MBC에서 마이크를 잡기 시작하여 TBC, KBS를 거쳐 2년전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방송 외에도 여러 사회생활을 할 여유가 생기면서 삶이 더욱 다채로워졌다는 것이 왕동문의 말이다. 최근 ′제2의 고향′인 부산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젊은이들과 접할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는 것도 그 일부다.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프로그램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 내 의견을 많이 피력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방송진출의 길은 활짝 열려있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언론 지망생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왕 아나운서는 "방송에의 진출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방송인이라면 PD, 기자, 아나운서 그리고 엔지니어만 생각하는데, 수시채용하는 리포터와 비교적으로 안정직인 작가도 방송인에 속하죠"라며 보통 지나치기 쉬운 정보를 쏟아내었다. "방송사도 공중파 3사만 있는 게 아니라, 케이블이나 프로덕션도 있다"며 "현 공중파 방송의 20%정도가 프로덕션 프로그램인데 앞으론 50%비율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프로덕션 쪽의 직업도 도전해 볼 만하다"며 여의도에 빼곡한 프로덕션으로의 진로도 소개를 해 주었다.

 "94년 서울로 발령을 받고 약간 불안해 한 건 사실이에요. 과연 지방국립대를 나온 나를 알아줄까 하고요. 중앙무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학벌이 굉장하니까요. 하지만 경북대라는 인지도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고,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더군요"라며 경북대 동문으로서의 자긍심을 나타냈다. 지방대라고 홀대를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전혀 없으며, 언론사 시험은 자격요건만 갖추면 철저히 실력 중심의 공정경쟁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왕 아나운서는 방송인으로서 또, 우리 대학 동문으로서 많은 경북대 후배들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만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햇병아리 아나운서에서 베테랑이 되기까지
  그는 중·고교시절부터 아나운서의 꿈을 가지고 방송반 활동을 했으며, 대학시절에는 신문과 녹음기를 가지고 뒷산에 올라가 멘팅 연습을 주로 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방송학과가 없었던 모교에서 국문과로 진학한 것도 아나운서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방송 입문은 쉽지 만은 않았다.
 "대구·경북인은 아나운서의 자질로 볼 때 영점입니다"라며 방송 입문의 가장 큰 걸림돌인 사투리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1977년 대구MBC의 4차 면접시험에서 사투리 때문에 안타깝게 낙방하고, 그 정보를 미리 입수한 안동MBC에서 ′불러 줘′ 그리로 갔다. 그 곳에서 6개월 정도 일하다가 동양방송 TBC에 입사하였다가, 다시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로 자리를 옮겼단다.
 이력과 함께 방송환경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그는 살아있는 ′방송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기술의 혁명이라 불리는 ENG카메라와 컬러 TV의 등장, 지금의 HDTV에 이르기까지 많은 진보를 함께 했고, 언론통폐합 조치와 5공 당시의 언론인 집단 해직을 겪으며 두 차례 사표를 쓰기도 했다고. 하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인생의 전부였기에 견딜 수 있었다"는 왕동문은 철저한 직업의식과 자신감을 가진 아나운서였다.

인생의 가장 큰 재산은 자신감

    왕 아나운서는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고했다. "주눅이 들게 되면 자세나 표정에서 나타나게 마련이고, 이것은 많은 사회적인 활동에 지장을 주게 됩니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4강까지 가게 된 것도 근본적으로 자신감 덕분 아닙니까. 내실이 다져진 후의 자신감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大경북대인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것이 선배가 후배에게 해주는 최고의 조언이리라.

글·학생리포터 류미화 waterdog1126@hanmail.net
사진·학생리포터 오인환 zeallyan@dreamwiz.com

왕종근 아나운서는? 

-1977년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7년 안동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입사  

-1978년 동양방송(TBC) 입사

-1980년 KBS 부산방송국 아나운서  

-1980년 KBS 아나운서실 차장

-1999년 프리랜서 방송인 선언  

-2001년 부산동명정보대학교 매스컴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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